사도세자의 현륭원에 합봉 되었다. 1899년(고종 36) 사도세자가 장조(莊祖)로 추존됨에 따라 경의황후(敬懿王后)에 추존되었다.
2. 작품 속 역사적 배경 - 당파싸움의 희생양 ‘사도세자’
<한중록(恨中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7~18세기의 조선 왕실의 계보와 당파 싸움에 대해 미리 알아 둘
옹주의 과도한 집착과 어머니를 향한 도를 지나친 행동 등을 미루어 왕위에 오르고 얼마 되지 않아 처벌한다. 가정 내 특유의 지성을 닮아 매사에 현명하고도 절도 있게 대처하는 임금이다.
(6) 그 외의 인물들
- 정후겸 : 화완옹주의 양자
- 홍봉한 : 혜경궁의 아버지로, 혜경궁이 정치적 기반을 다지
영조가 일찍 죽은 맏아들 효장(孝章)세자의 뒤를 이어 종통을 잇게 하였다.
1.2 정조 즉위 전 시대적 상황
정조가 즉위 할 때의 정국의 불안한 상황은 표면상이라도 균형을 유지했던 붕당이 무너진 숙종 때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숙종 → 경종 → 영조 → (사도세자) → 정조
숙종은 자신
영조가 일찍 죽은 맏아들 효장(孝章)세자의 뒤를 이어 종통을 잇게 하였다.
1.2 정조 즉위 전 시대적 상황
정조가 즉위 할 때의 정국의 불안한 상황은 표면상이라도 균형을 유지했던 붕당이 무너진 숙종 때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숙종 → 경종 → 영조 → (사도세자) → 정조
영조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장헌세자(莊獻世子)이며, 어머니는 영의정 홍봉한의 딸인 혜경궁(惠慶宮) 홍씨(洪氏)이다. 1759년(영조 35) 세손에 책봉되었고, 1762년(영조 38) 2월에 좌참찬 김시묵의 딸인 효의왕후(孝懿王后) 김씨를 비로 맞아들였다. 정조는 이 해 5월에 아버지사도세자가 뒤주 속에 갇혀 죽
묘사되어 있어 역사적인 자료로도 큰 의미를 담고 있다.
작가의 기구한 운명이 현실이라기보다 소설과 같이 극적이고 입체적이어서 한 편의 역사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과 함께 혜경궁 홍씨의 일대기를 적어 놓은 한중록을 보며 역사적 사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몰락까지 ④ 순조의 탄생에서 자신의 회갑연까지의 일을 기술하고 있다.
이런 其一의 특징은 임오 화변이나 갑신처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자신의 감정을 억제한 반면, 친정 중심의 일에 대해서는 지나칠 만큼 세밀하게 적고 있는 것이 대조적으로 비쳐져 『한중록』의 집필 의도를 알 수 있게 한다.
옹주와 정순왕후 및 그 일당들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악하고 간특한 무리라고 생각했다. 필자는 혜경궁 홍씨의 기고만장한 인생에 많은 동정심과 안타까움을 가졌다. 필자는 어렸을 때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을 구하기 위해 여러 서점을 돌아다녔다. 4번에 걸쳐 쓰여진 한중록의 전편이
사도세자는 영조의 둘째 아들로 조숙하고 총명한데다 영조의 총애를 독차지하여 언행에 거리낌이 없었다. 게다가 호기심이 많아 지난날의 정쟁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기존 질서에 거부감을 지니고 있었다. 탕평책에 따라 다시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남인과 노론 명분 속에 미약한 권력을 유지하여 온
Ⅰ. 序 論
지금까지 궁중문학에 관한 연구는 여러 선학들에 의해 고찰되어 왔다. 『계축일기』,『인현왕후전』,『한중록』은 궁중의 비극을 다룬 작품으로 그 문학성이 인정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과의 관계에서도 다각적인 측면에서 비교되었다. 특히 오늘날 전해지는 궁중문